[아침햇발] 10%, 15%, … 10분의 1형 /여현호 한겨레 |기사입력 2008.12.11 22:16 [한겨레] 아침햇발
"아직도 우리 옆을 지나던 수레바퀴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수레 안에는 어른 주먹 크기의 날카롭고 무거운 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흐느껴 울면서, 살려 달라고 아이처럼 호소하고 빌었다. 어떤 이들, 바부린 같은 사람들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내가 그의 얼굴에 돌을 내려치자 내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 세계대전 Z > 맥스 브룩스) 10명마다 한 명씩 추첨으로 뽑아 처형하는 '10분의 1형'의 모습이다. 실화는 아니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10분의 1형은 옛 로마에서 전투 중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킨 군단에 가해졌다. 길게는 십수 년을 동고동락한 동료를 나머지 아홉 사람이 돌이나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하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집단형벌이다. 고대 로마에서 1630년대의 스웨덴군 등 중세를 거쳐, 20세기 러시아 등에까지 이어졌다.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전함 포템킨호 반란 사건도 구더기가 든 식사를 거부한 수병들에게 이 형벌을 적용하려 한 데 반발해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한 소련군 장군이 패주한 병사들을 일렬로 세운 뒤 10명째 되는 사람마다 쏘아 죽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 대열에 서 있다면 어떻겠는가. 많은 이들이 지금 그 줄에 서 있는 기분일 게다. '구조조정 본격화' '감원 쓰나미' 따위 언론 보도는 권총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소리로 들린다. 자신이 뽑히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한두 사람의 것이겠는가. 물꼬는 정부가 앞장서 텄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력 15%를 구조조정하기로 한 한국농촌공사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며 공기업 구조조정을 독려하자, 여러 부처가 부랴부랴 나섰다. 정부는 '10% 이상 경영효율화'를 주문했을 뿐 인원 감축을 요구한 건 아니라지만, 채근에 쫓긴 공기업들은 '10% 이상 인력 감축'으로 받아들여 10%, 15%, 12% 따위 목표치를 내놓았다. 물론, 공기업의 경영 효율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인력감축 목표치엔 자연감소분 등 거품도 있을 게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도미노처럼 민간기업으로 퍼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벌써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그 파장은 간단치 않다. 10분의 1형은 남은 병사들을 복종시키고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동료를 죽인 게 된 병사들의 사기는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연구를 보면,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절망감 못지않게,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두려움·분노·불안·배신감 따위 정신적 혼돈과 자기 모멸감 등 '황무지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 조직문화와 인적 네트워크도 송두리째 흔들린다. 외환위기 때 이미 겪은 바다. 인건비를 비용으로만 보면 감원은 쉽고 '표 나는' 비용절감 수단이다. 하지만, 조직 구성원을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인 인적 자본으로 보면 계산법이 달라진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어려운 때일수록 인재를 확보하는 게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5대 재벌그룹이 억지로 사람을 잘라내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런 인식 때문일 수 있겠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 같은 막무가내식 감원 말고 다른 위기극복 모델을 찾아야 할 때다. 그런 마당에 정부는 몇 % 따위 숫자를 들이밀고 있다. 냉혹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오늘 일한 사람이라고 내일 꼭 쓸 필요가 있느냐는 토건시대 막노동판식 발상이 통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희망의 불씨를 나누는, 제대로 된 리더십이 아쉽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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